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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 법문집

[법정스님 법문-한사람은 모두를, 모두는 한사람을] 1. 부처님 옷자락을 붙잡아도

by 바이로자나 2024. 6.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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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의 법문집 '한사람은 모두를, 모두는 한사람을'에 수록된 첫번째 법문 '부처님 옷자락을 붙잡아도,' 입니다. 이 법문은 2009년 5월 2일 부처님 오신날 말씀하신 내용입니다.


■ 부처님 옷자락을 붙잡아도

  비가 내려서 밖에 계시는 분들은 불편하겠지만, 이맘때면 산불이 많이 나기 때문에 한편으론 비 오는 것이 다행스럽게 여겨집니다.
  수십 년 된 나무들이 한순간에 잿더미로 변화하는 모습을 너무 많이 봐 온터라, 이 비가 우리의 법회에는 방해가 될지 모르지만 자연의 조화를 위해서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부처님 오신날이 좋은 날이어서 우리들이 이렇게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저마다 세상을 살아오면서 그분의 가르침을 통해 많은 깨침과 은혜를 입고 계씰 줄 믿습니다. 여러분이나 저나 이 생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만날 수 있게 된 것에 거듭거듭 고마움과 다행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우리는 어떤 것이 진정한 불법(佛法)인지 한번 돌이켜 보아야 할 듯 싶습니다.
  머리깎고 먹물 옷을 입었다고 해서 출가 수행자라 할 수 있는 가?
  또 절에 행사가 있을 때마다 동참한다고 해서 재가신도라고 할 수 있는 가?
  어떤 것이 불자이고 부처님 가르침인지 오늘 같으 날 한번 돌이켜 보아야 합니다.
  초기 경전에는 후기에 결집된 대승경전(불타 석가모니 사후 대승운동이 일어나면서 편찬된 경전들)과 달리 불타 석가모니의 인간적인 면모들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인 (여시어경),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는 뜻인 (여시어경)에 다음과 같은 법문이 실려 있습니다. 
  원문에는 '어떤 비구'라고 되어 있지만, 여기서는 이해하기 쉽게 '어떤 사람'으로 바꿨습니다.
    "어떤 사람이 내 가사자락을 붙들고 내 발자취를 그림자처럼 따른다 할지라도, 만약 그가 욕망을 품고 조그마한 일에 화를 내며 그릇된 소견에 빠져 있다면, 그는 내게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고 나 또한 그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왜냐하면 그는 법을 보지 못하고, 법을 보지 못하는 이는 나를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법이란 추상적인 용어이지만, 검찰이나 판사들이 쓰는 법과는 달리 부처님이 평소에 가르쳐 주신 교훈, 즉 교법을 이야기 합니다.
  절에 다닌다고 해서 불교도 일 수 있는가?
  겉만 보아서는 그 실체를 알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일 년에 한 차례씩 부처님오신날을 기리기 위해 이렇게 한자리에 모이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과연 이것이 진정한 종교 생활을 위해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이런 기회에 곰곰이 되새겨 보아야 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순간순간 그대로 실천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에 따라서 진정한 불자일 수도 있고 사이비 불자일 수 도 있습니다.
  이것은 부처님의 준엄한 가르침입니다.
  "설령 내 가사 자락을 붙들고 내 그림자처럼 나를 따른다 하더라도, 생각이 다르고 뜻이 다르면 나와는 아무 상관없는 그런 존재"란 소리입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일입니다. 집안 살림도 제쳐놓은 채 절이나 교회에 자주 다니는 신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는 절이나 교회에 전혀 다니지 않는 사람보다도 마음 씀이 훨씬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절에 와서 부처님 법문을 듣고 가르침을 이해했다면 그대로 일상의 삶에서 실천해야 하는데, 불필요한 말들을 이리저리 옮기는 사람들이 절이든 교회든 무수히 많이 있습니다. 신도뿐 아니라 수행하는 스님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어떤 것이 진정한 불자의 모습인지, 어떤 것이 올바른 신앙생활인지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연등 밝히고 불공 올리고 기도만 하고 헤어진다면 부처님오신날이 전혀 의미가 없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순간순간 그대로 실천하고 있는가 아닌가에 따라서 진정한 불자인지 가짜 불자인지가 판명됩니다.
  경전은 계속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 또 어떤 사람이 내게서 천 리 밖에 떨어져 있을지라도, 만약 그가 욕망 때문에 격정을 품지 않고 화를 내는 일도 없으며 그릇된 소견에 빠져 있지 않고 도심(道心)이 견고해서 부지런히 정진하고 있다면, 그는 바로 내 곁에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고, 나 또한 그의 곁에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법을 보는 자이고, 법을 보는 자는 곧 나를 보는 자이기 때문이다."
  아까와는 다른 측면에서 이야기 합니다.
  한마디로 말해, 나는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 늘 함께 있다는 가르침입니다. 스승 제자 간이든 연인간이든 혹은 부부간이든, 한집 한 도량에 산다 할지라도 뜻이 같지 않으면 그 거리는 십만 팔천 리 입니다. 뜻이 같아야 한 가정으로 이루고, 한 공동체를 이루고, 한 도량을 이룹니다.
  불타 석가모니와 우리 사이에는 시간적으로 2,500년이라는 긴 세월이 가로놓여 있습니다. 또한 인도와 우리나라는 그 거리가 수 만 리 떨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일상생활에 그대로 실천할 수 있다면 그러한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지금 이 자리에서 함께 할 수 있다는 가르침입니다.
  살아 있는 가르침은 늘 현재 진행형입니다. 2,500년 전 어떤 특정한 사회에서 어떤 특정한 대중을 상대로 한 설법이라 할지라도 그 가르침이 살아 있다면 지금 바로 이 현장에서, 오늘 이 자리에서  우리가 귀 기울여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죽은 가르침은 과거 완료형입니다. 이미 과거로 끝난 것입니다. 
  그러나 살아 있는 가르침은 늘 지금 여기에서 현재 진행 하고 있습니다.
    "법을 보는 이는 나를 보고, 나를 보는 이는 곧 법을 본다."
  이 가르침을 마음 깊이 새겨 두시기 바랍니다.
    "뜻을 같이하는 사람과 나는 늘 함께한다."
  우리가 깨어 있다면, 나날의 삶 속에서 진리의 가르침을 그대로 수지독송(경전을 받아 항상 잊지 아니하고 마음속에 새겨서 늘 읽은 것) 하고 있다면, 그 가르침이 몸과 마음에 배어 있다면, 부처님과 우리 자신은 시공간을 뛰어넘어 늘 함께 하고 있습니다.
  [아함경]에 보면 한번은 부처님이 안 계실 때 제자들이 자기들끼리 모여 앉아서 대화를 나눕니다. 부처님은 일단 제자들의 대화가 끝날 때까지 문밖에서 기다렸다가 노크를 하고 안으로 들어갑니다. 그러고는 제자들에게 묻습니다. 모여서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나누었느냐고, 그러자 제자 중 하나가 대답합니다.
    "저희들이 모여서 부처님이 말씀하신 진리에 대해 얘기를 나누는 중이었습니다."
  그러자 부처님이 착하다고 하면서 칭찬을 합니다. 그러고는 수행자들에게 당부를 합니다.
    "수행자들이여, 그대들이 모여 앉으면 마땅히 두 가지 일을 해야한다. 하나는 진리에 대한 이야기이고, 또 하나는 침묵을 지키는 일이다."
  이것은 수행자들만이 아니라,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가르침 입니다. 인사는 간단히 나눌수록 좋고, 진짜 해야 할 대화는 진리와 법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침묵하라는 것입니다.
  또한 부처님은 묵빈대처(默賓對處) 하라고 가르칩니다. 침묵으로써 물리쳐 대처하라는 것입니다. 그럼 스스로 사라질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인간관계에서도 그렇습니다. 어떤 갈등이 있을 때 굳이 대응할 필요가 없습니다. 세월이 가면 다 풀립니다. 무슨 말을 들었다고 해서 즉각 대응할 것이 아니라, 내가 남의 얘기를 많이 했기 때문에 그 과보로 남한테 또 이렇게 궂은 소리를 듣는 모양이구나 하고 스스로 한 생각 돌이키면 시간이 다 해결해 줍니다. 사실이 아니라면 굳이 변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 우주 질서 앞에 내가 떳떳하면 됩니다. 그러면 내가 사는 이 세상이 훨씬 조용해집니다. 특히 신앙생활 하는 사람이 일반인과 다른 점이 바로 그것입니다. 마음을 거듭 안으로 돌이키는 것, 늘 평정을 유지하는 것, 그런 과정을 통해서 본래 마음을 유지하는 것이 신앙생활이고 종교 생활입니다.


 
 

★ 역경속에서 찾아가는 인생의 참뜻. 하루 한편 보왕삼매론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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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을 딛고 나아가자] 하루한편 보왕삼매론 2. (고난)

우리가 마주하는 순간은 헤쳐나가기 쉽지 않은 순간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찾아오는 고통은 참고 견딜만합니다. 그 역경을 딛고 나아가 마침내 이루어 낼때 인생은 더 행복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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